정상궤도 이탈한 국힘…북핵 총괄 현직 외교관 ‘차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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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원 : 북핵과 한반도 문제를 총괄하는 현직 외교부 고위 간부가 국민의힘으로 직행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29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참가한 가운데 인재 영입 환영식을 열고 김건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58)의 영입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김 본부장은 국민의힘 비례정당인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부산 태생으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외무고시 23기로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그는 북핵협상과장, 북미국 심의관, 주영국대사를 거쳐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2002년 5월 차관급인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에 임명돼 지금까지 일해왔다.

김 본부장의 여당행에 대한 비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현직 고위 외교관의 정치권 '직행'이 과연 적절하냐는 것이다. 현직 고위 외교관의 정치권 '직행'은 전례가 없고 이번이 처음이다. 김 본부장은 얼마 전 외교부에 사의를 표명한 뒤 28일 오전까지 근무했고 29일 자로 의원 면직됐다. 외교가에서 그의 정치권 직행에 대한 비판과 관련해 국민의힘 한동훈 위원장은 '뭐가 문제냐'라는 태도를 보였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한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현직 외교관의 정치권 직행에 대해 "왜 부적절한가"라며 "언론인에서 바로 넘어오는 것과 비교하면 어떤가. 판사, 검사 오고 이런 건 문제 삼을 순 있겠지만, 외교관? 글쎄요. 큰 이해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라고 주장했다. 현직 언론인과 현직 판·검사의 정치권 직행은 이해관계가 있어서 문제지만, 이해관계가 없는 현직 외교관은 괜찮다는 얘기인 셈이다.

현직 고위 외교관은 최초…공무원 정치화 부추겨

우리 사회가 그동안 주요 공인(公人)의 정치권 직행을 '금기'로 여긴 데는 이를 방치한다면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공공선에 봉사해야 하는 '공인'을 현직에 있을 때부터 '정치화'시킨다는 걱정에서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번 총선에서 승리하겠다는 욕심에 한 위원장은 '외교부 정치화'란 판도라의 상자를 직접 연 셈이다. 당장은 미미하게 생각될지 몰라도 그 부작용은 앞으로 다른 정부 부처와 그 외 공공영역의 '정치화'로 확산할 우려가 크다.

다른 하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북한-러시아 군사협력, 날로 격렬해지는 남북 군사 대립 등 한반도와 주변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한 시기에 우리의 운명과 직결된 이 중차대한 문제의 총괄 책임자가 여당 국회의원이 되고자 '무작정' 현직을 박차고 나가는 게 적절한 처신이냐 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그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총선 승리를 위해서 기존의 상식과 관례를 무시한 국민의힘과 한 위원장의 행태도 오십보백보다. 사실상 예고 없는 김 본부장의 사직으로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겸직하는 정부의 북핵협상 수석대표도 느닷없이 공석이 됐다. 이 자리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국을 상대로 북핵과 한반도 문제 관련 각종 교섭을 벌이는 외교부의 핵심 직책이다. 일례로 지난 2일 김건 본부장은 외교부에서 방한한 러시아 북핵수석대표인 안드레이 루덴코 외교차관과 만나 러-북 군사협력이 한반도와 유럽의 안보를 위협한다면서 즉각 중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특히 신임 조태열 외교 장관이지난 20일부터 브라질 주요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에 이어 워싱턴을 방문하는 등 해외에서 첫 순방 외교를 펼치는 도중에 고위 핵심 간부가 그만두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김건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여당 직행'

외교부는 일단 북핵 수석대표 역할을 북핵 차석대표인 북핵외교기획단장이 대행하도록 할 방침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28일(현지시간) 미국에서 한국 취재진과 만난 정부 고위당국자도 "개인적 선택이고 그로 인한 영향은 별로 없을 것이다. 김홍균 외교부 1차관이 한반도본부장을 역임해 커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고, 대행 체제로 가는 데 큰 문제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수선해진 외교부 내 분위기와 흐트러진 기강을 조기에 어떻게 바로잡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물론 과거에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출신 외교관이 정치권으로 간 사례는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주미대사, 국가안보실장을 지낸 조태용 현 국가정보원장이다. 조 국정원장은 외교 1차관을 하고 2015년 5월 옷을 벗었다가 2020년 제21대 총선 때 국민의힘 비례대표 의원이 됐다. 김 본부장과는 달리 5년이란 '휴지기'가 있었다. 이날 영입 환영식에서 김 본부장은 "기술 패권 전쟁이 벌어지고, 지정학에 따른 갈등이 심화되며, 세력 전이에 의한 국제 정세 변화가 심각하다. 이런 시대를 틈타 북한은 분단을 영구화하려고 획책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중요한 과제다. 국민과 민족을 위해 봉사할 기회를 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나름 진지하게 포부를 밝혔지만, 정치권에 첫발을 내딛는 시점부터 상식과 관례를 벗어나 처신한 것은 두고두고 본인에게 큰 짐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