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아이돌 스타일 완성 돕는 사람들의 애환은

TV를 켜면 화려하게 주목받는 스타 연예인이 등장한다. 그 화려함은 건강하게 관리된 몸과 빛나는 메이크업 그리고 옷차림에서 나온다. 콘셉트에 따라 매번 바뀌는 연예인의 스타일링을 책임지는 스타일리스트가 있고, 스타일리스트의 일을 돕는 어시스턴트가 있다. 지난 3월 24일 양천구의 한 카페에서 패션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 유진님을 만나 그들의 노동 이야기를 들었다.

여러 가지 변수를 모두 대비해야 하는 일

– 패션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라는 용어가 다소 생소합니다. 어떤 일을 하시는지요?

“배우나 가수, 아이돌 그룹 등 연예인을 아티스트라고 불러요. 아티스트 스케줄이 잡히면 옷, 신발, 모자, 소품까지 다 챙기는 일을 하는 패션스타일리스트가 있어요. 보통 실장님, 실장 언니라고 하는데, 그분들을 보조하는 일이에요.

스케줄은 화보 촬영일 수도 있고, 공연,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일 수도 있죠.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를 예로 든다면, 대본에서 담당하는 배우가 출연하는 장면을 보면서 스타일링을 짜요. 대본의 내용, 직업, 배경에 따라 스타일링이 달라지니까요. 또 세트가 아니라 야외 로케이션 촬영도 하거든요. 길거리 신이거나 차를 운전하는 신도 있고요. 야외 촬영할 때는 날씨나 여러 가지 변수가 생길 수도 있고, 촬영 순서나 대본 내용이 현장에서 갑자기 바뀔 수도 있으니까, 전부 대비해야 해요.”
큰사진보기 ▲ 의상실에서 아티스트에게 입힐 옷을 들고 있는 유진 님. ⓒ 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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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시간이 일정하지 않겠네요.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촬영 스케줄이 있을 때는 현장에 거의 붙어 있고, 아니면 대행사에서 빌려온 옷을 세탁 맡기고 찾아오는 등의 일을 해요. 실장님이 ‘오늘은 어디 가서 픽업해야 되니까, 가서 실물 체크해줘’ 하면 가서 의상 사진 찍어 보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희는 99%가 외근이에요.

현장을 가는 날이면 청담동 사무실로 출근해서 대기하고 있다가 아티스트 매니저가 데리러 오면 준비한 의상과 함께 저도 미용실로 가요. 헤어·메이크업 하는 동안 대기하고, 끝나면 연예인과 같이 상암동이나 일산의 스튜디오로 가서 옷 입히고 녹화 들어가죠.

현장에 계속 붙어 있어야 되는 프로그램도 있는데, 그런 게 아니면 나가서 밥 먹고 오기도 하고, 조금 쉴 수도 있어요. 그래도 방송이라는 게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거라, 갑자기 방송작가가 와서 찾는 일도 있지요.

촬영이 끝나면 다시 강남으로 넘어와서는 빌린 옷을 반납하거나 다시 옷을 가지러 가거나 그렇죠. 촬영이 늦어지면 새벽 1~2시, 아니어도 11시, 12시에 주로 퇴근해요. 예전에 아이돌을 맡았을 때는 더 심했어요.”

– 아이돌 스케줄이 정말 살인적이라고 하던데요.

“음악 프로그램은 본방송 전날 밤 10시부터 사전 녹화가 시작이 되는데, 신인들은 더 힘든 시간에 리허설을 할 수밖에 없고, 언제 녹화 들어가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새벽 4시에 퇴근해서는 아침 7시에 다시 출근한 경우도 있었고, 어떤 날은 오후 2시에 출근해서 1시간 정도 일하고 퇴근하기도 해요.

문제는 그런 스케줄이 거의 즉석에서 결정되기도 한다는 거예요. 2, 3일 전에라도 알면 조금이나마 수월한데 그렇지 못한 경우도 종종 생겨요. 아이돌 팀을 맡았을 때는 내일 몇 시까지 출근할지 전날 밤에 변경되기도 하고요.”

– 촬영 직전까지 준비할 게 많아 보입니다. 어떤 일을 하시나요?

“촬영 기획안이 나오면 스타일링을 짜요. 5명 그룹이라고 하면, 5명이 하나의 착장으로 가기도 하고 각기 다른 콘셉트일 수도 있죠. 촬영에 들어가면 현장에 그냥 항상 붙어 있다고 보시면 돼요. 옷 갈아입는 거 도와주고, 옷매무새를 잡아주기도 하고, 드라마 촬영일 때는 의상팀에서 무언가를 받아와야 하기도 하고요.

촬영하는 동안도 계속 모니터를 보면서 옷이 삐뚤어지면 바로잡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아티스트 매니저가 갑자기 자리를 비우게 되면 그 역할을 제가 조금 도와드리기도 해요. 실제 현장에서 촬영 들어가면 명확히 업무가 구분되지는 않아요.”

– 힘들지만 재미있는 일도 많을 것 같아요.

“재미는 있어요. 어쨌든 저도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요. 요즘은 남자 ‘착’을 많이 하는데, 방송사에서 요구한 콘셉트에 따라 정장 한 착만 짠다고 해도 다양한 선택이 있어요. 제가 전공을 한 건 아닌데, 의복 역사가 깊다 보니 공부할 내용들이 많아요. 그래서 일 때문이 아니더라도 쉬는 날에 혼자 시장조사 다니고, 지나가다 맞춤 정장 테일러숍에 가서 상담하기도 해요. 원단의 종류에 따라서 느낌이 다르고, 슬리브나 타이 핀 같은 액세서리만 바뀌어도 느낌이 다르고요.

최근에 제가 사비로 구매해놨던 옷을 아티스트에게 입히게 되었는데, 현장에서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어떤 느낌을 내려고, 어떤 루트로 구매한 아이템이고 굳이 설명하지는 않았는데, 칭찬하는 말들이 계속 들려오면서 혼자 속으로 뿌듯했어요. ‘안목 있네, 스타일 좋네’ 이런 말 한마디가 기분 좋았죠.”

“미래 계획하기 힘든 일이지만…”
큰사진보기 ▲ 유진 님의 휴대폰에는 스타일링에 관한 사진이 가득했다. ⓒ 윤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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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 어려움도 많으리라 예상되는데요, 힘든 점에 관해서도 말씀해주시겠어요?

“일단 매달 급여 차이가 너무 커요. 적게는 30만, 40만 원을 받다가, 바빠지면 250만, 350만 원을 받을 때도 있고요. 차이가 너무 커서 안정된 생활을 하기 어려워요. 사람을 지치게 만들죠.

두 번째 팀 가기 전에 일을 쉴 때 드라마 촬영 현장에 알바를 나가기도 했어요. 180만 원으로 기억하는데, 충분하지 않지만 고정으로 월급을 받을 수 있으니 당분간이라도 이렇게 살자 마음먹기도 했어요. 그런데 막상 3주 만에 잘렸어요. 맡은 배우가 중도에 하차하게 되면서, 저도 일자리를 잃은 거죠. 이틀 전에서야 급하게 통지를 받았어요.

지금은 적더라도 월급을 받는데, 두 번째 팀에서는 시급으로만 받았어요. 팀을 퇴사할 생각은 없고 생계는 유지해야겠으니 서빙 알바를 하기도 했어요. 어느 날은 정말 허름하게 입고 나와서 알바 마치고 오후에 팀으로 출근하는데, 하필 그날 업무가 명품 의류 매장에 가서 의상을 구매해오는 거였어요.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준 카드를 내밀었는데 이용한도가 초과됐다는 거예요. 회사에 전화해서 풀어달라고 했는데, 곧바로 처리되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음식물 튄 옷 입은 채로 카드 풀릴 때까지 계속 명품 매장에 묶여 있던 적도 있어요.”

– 예측 못하게 바뀌는 게 많으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미래를 계획할 수가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스타일리스트 팀 자체가 프리랜서라고 보시면 돼요. 연예인도 그렇겠지만 사실은 스타일리스트들도 비슷한 불안감을 항상 가지고 있죠.

어쨌든 저는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직장 개념이지만, 개인 작업도 진행을 하고 있거든요. 이게 조금씩 쌓이면서 나도 팀장이 되고 실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최근에는 한순간에 일이 뚝 끊기는 것도 많이 봐서… 사람이 어떤 일을 하면서 10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3년 뒤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선배들 얘기를 들어봐도 안타까운 이야기가 많아요. 그래서 아예 다른 쪽으로 빠지는 친구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고요.”

– 많은 옷을 들고서 주로 걸어서 이동하시려면 신체에 부담도 상당할 것 같습니다.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가면, 대봉이라고, 대행사 봉투 들고 다니는 애들 많아요. 저는 대부분 남성 아티스트랑 작업하다보니 다행히 그렇게 많은 짐을 갖고 다니지는 않아요. 저보다 더 많은 짐을 가지고 다니는 친구들도 많아요.

계절이나 소재에 따라서도 달라요. 가죽 옷, 겨울 옷은 훨씬 무거우니까요. 옷이 엄청 무겁거든요. 하루에 6~7시간 의상 수급하러 돌아다녀야 하니 손 떨림도 많아요. 저는 원래 하체 관절이 안 좋아요. 일을 쉴 때는 매일같이 운동하면서 금방 회복됐었는데 복귀하니까 또다시 악화되더라고요. 양쪽에 발목 보호대랑 무릎 보호대까지 차기도 했어요.

또, 식습관부터 생활 패턴이 너무 불규칙적이죠. 어떨 때는 정말 한 끼 먹기도 힘들고 어떨 때는 너무 많이 먹어요. 영양소 갖춘 식단을 먹는 게 아니라 급하게 때워야 되면 패스트푸드도 많이 먹으니까요. 잠도 제때 못 자고요.”

– 몸뿐 아니라 마음 건강도 우려되는데요.

“물론 일하다가 실수하면 혼날 수 있어요. 그런데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말을 참 많이들 내뱉어요. 실장들이 어시스턴트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는 것 같아요. 그게 가장 힘들고요.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해져서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도 많아요.

또 외모에 관련된 직업이다 보니까 성희롱적인 발언을 듣는 경우도 많아요. 배우랑 단 둘이나, 매니저까지 셋만 차에 있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카메라, 녹음기 없는 데서 그 사람의 본성이 나오거든요. 불가피한 신체 접촉도 많아요. 대기실에서 옷을 갈아입혀야 하니까 남자 아티스트들이 제 앞에서 속옷 차림으로 있는 경우가 많아요. 옷 입혀주다보면 신체 접촉이 생길 수밖에 없죠.”

– 마지막으로 일하면서 실장, 혹은 일터에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요?

“밥 안 굶기는 것,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지 않는 것! ‘미투’ 이후에 개선된 건지 모르겠는데, 드라마 처음 시작할 때 대본 첫 페이지에 익명으로 신고할 수 있게 안내가 있어요. 담당 연락처도 실명과 함께 적혀 있어요. 방송국 한 쪽에는 소리함이 있어서 제보할 수 있는 장치들도 있고요. 방송업계가 아주 더럽다던데, 이런 장치가 있다는 점에서 너무 감사하죠. 앞으로는 더욱 개선되면 좋겠어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윤박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일터 4월호에도 실립니다.